마가복음3:1-6 틀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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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과진리교회 댓글 0건 조회 2,278회 작성일 19-03-16 09:31본문
2019년3월16일
마가복음3:1-6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오래 전 한 설교에서 들었던 웃픈 이야기 입니다. 당시 부동산 붐이 불었던 시기여서 모든 사람들이 부동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한 자매님도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아파트들을 매일 보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주일 예배날 성경 봉독의 차례가 되어서 주일 날 성경봉독대로 등단했습니다. 그리고 봉독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시편 118동 입니다.” 얼마나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던지 나도 모르게 시편 118동으로 말하게 된 것 입니다. 내가 관심 가지고 있는 것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 연약한 우리의 모습 입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던 사람들도 마찬 가지 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날 손마른 사람을 고치나 안 고치나 살피고 있습니다. 당시 랍비들은 안식일날 산파들이 분만을 돕는 행위, 할례 행위, 생명에 위협을 받을때의 의료 행위 등은 허용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았을 때 예수님의 행동은 빈틈 투성이었습니다. 병을 낫게 하면 바로 율법을 어기게 되는 것 입니다. 마치 함정을 파 놓고 걸리기만을 기다리는 수렵꾼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회복하신 하나님 나라가 자신들의 가치 기준과 달랐기 때문 입니다. 그들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은 불한당이기 때문 입니다.
온통 부동산에만 관심있던 자매님이나, 예수가 싫은 틀을 가지고 있는 바리새인 이 둘의 공통점은 내가 관심있고 에너지를 쏟고 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통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맞다 틀리다를 우리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분별의 기준을 정해주셨습니다. 선/악, 생명을살리는 것이냐 죽이는 것이냐?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거룩하게 여기던 안식일날 잘못된 틀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보여줍니다. 바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한 것 입니다. 예수님은 선을 행하기 위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열매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틀을 가지고 있던 자들은 안식일날 악과 생명을 죽이기 위한 열매들이 나타났습니다.
바리새인들을 나무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잘 못된 틀을 깨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여전히 내가 고수하는 틀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도 똑같은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입으로는 선을 생명을 살려야 한다지만 선보다는 악에 가까운, 생명을 살리기 보다는 죽이는 것에 가까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님 저의 인간적인 틀을 없애지 못합니다. 주님 께서 덮어 주셔서 내 틀이 아닌 주님의 틀로만 보는 복된 자 되게 도우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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