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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열매 "교만"(막9: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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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과진리교회 댓글 0건 조회 1,694회 작성일 19-04-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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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4월18일 

#길과진리교회 #마가복음묵상

#무지의열매”교만”

 

마가복음 9:30-37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 할때는 항상 연약한 열매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두번째로 제자들만 부르십니다. 제자들에게 먼저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제자들은 벌써 두번째 개인적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그들의 질서와 지식들이(메시야가 고난이라니? 개인이 어떻게 부활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을 흐리는 꺼풀들을 제거 해야 합니다. 한 두번으로 그 꺼풀이 제거 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세 번 의 가르침 속에서 전부 실패 합니다. 주님 날마다 깨닫지 못하게하는 꺼풀들을 발견하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제자 되게 하옵소서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처음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에 대해 가르쳤을때 그들은 깨닫지 못하여 예수님께 항변 합니다. 하나님의 일 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연약함을 드러냈습니다. 이번에 드러나는 연약함은 “교만” 입니다. 실재 제자들이 토론한 “누가 크냐?”는 토론은 상식적인 토론입니다. 당시의 문화를 살펴보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증하기 위해 자랑하는 것이 필요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 입니다.(존더반 강해주석) 세상에서는 내가 무엇인가를 잘하고 내가 한 업적을 가치 있게 포장하는 사람이 능력있는 자라 인정 받습니다. 큰 자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과 상관없이 커지고자 하는 것을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방법들이 하나님 나라와는 부딪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 크냐?”는 토론 내용을 예수님이 질문 했을 때 제자들은 잠잠 합니다. 그들도 내면 깊숙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세상의 기준으로 큰 자가 결정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꼴찌의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큰 자 즉 하나님께 인정 받는 자가 된 다 말씀 하십니다.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 되는 모습을 설명 해 주십니다. 이 모습은 어린아이 하나를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섬김을 말합니다. 1세기 문화에서 어린아이는 노동력도 없고 사회적 지위가 없어 무시 받는 존재 입니다. 오히려 그런 낮은 존재를 환영하는(영접하다) 행동은 당시의 질서를 깨는 행동 입니다. 오늘 말로 왕따(명예/물질 부분에서) 당하기 쉬운 행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큰 자가 되는 것은 이러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하찮고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 하나님 아버지를 환영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 입니다. 이 둘 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처음 되고자 하는 행동은 “나” 중심 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큰자가 되는 행동은 “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꺠닫지 못하는 자는 끝끝내 “나 “ 중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예배 마치고 주차장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연약한 자를 절대 돌보지 않습니다.

  주님 내안에 이런 교만의 모습들이 보인다는 것은 아직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 입니다. 수백번 성경을 읽고, 수백번 예배를 드려도 아직 주님을 모르는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알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열매를 드릴수 있는 복된 자 되게 하옵소서 


그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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